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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일상

041> 글을 왜 쓰는가?- 우울감과 글쓰기

by 쑥잼 2020. 11. 5.

 한 달여간 매일 글 같은 것을 쓰려고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40개의 글을 쓰는 동안 글을 쓰는 것을 일과로 만들었다.

글을 쓰는 일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던 중,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무엇을 쓰고 싶은가?"

"왜 쓰고 싶은가?"

이 두 개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나? 그러면 좋겠지만 능력 밖이다.

 

"가치 있는 정보를 다루는가?"

"인식을 전복시키는가?"

"정서에 울림을 주는가?"

 

 아무것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러면 나는 왜 쓰는가? 그저 나의 만족을 위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 타령'에 빠져서 이틀을 우울감 속에 보냈다. 타인의 삶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돈이 되지도 않는데 시간을 들여 글을 왜 쓰고 있는가? 나를 깎고 낮추었다.

 

 오늘 아침도 눈을 뜨면서부터 우울한 기분으로 시작했다. 박지선님의 부고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일상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혜민스님의 목소리로 명상을 하고, 아침을 먹고, 그래도 우울하여 해를 쬐면서 산책을 했다. 걷기 명상을 듣는데 '축복하기'가 어색했다. 평소 삶에서 다른 사람을, 다른 생명을 축복해본 적이 없는 인색함 때문이리라. 내 먹고사니즘이 힘들다고 내 삶에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리라. 깨달음을 하나 얻었으나 우울감은 떠나지 않았다. 땀을 흘리고 계단까지 걸어서 올라오니 뛰고 있는 심장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미약하게나마 조금 나아졌다.

 새 밥을 해서 점심을 잘 챙겨먹고,  넷플릭스로<<스티븐 유니버스>>를 보았다. 악한 자가 나오지 않고 상상력이 뛰어나면서도 서로의 관계를 이야기해서 편안하다. 몸을 좀 움직여보았다. 어제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 이불로 바꾸고, 세탁을 했다. <<그림 멘토 버트 도드슨의 드로잉 수업>>을 읽고, 낮잠을 1시간 여 잤다. 일어나서 발을 그렸다. 남편과 대화를 좀 나누었고, 저녁을 같이 먹었다. 뭔가 불만스러울 때 매운 불닭볶음면을 먹고 싶은 날은 한 달에 한 번 정도인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하루 동안 하고 싶은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산책도 해보고, 좋아하는 영상도 보고, 명상도 해보고, 그림도 그리고, 먹고 싶은 것도 먹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온기를 나누었다. 이것저것 해보며 감정을 돌볼 수 있었고 그 과정을 글로 적고 있다. 글을 쓰면서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정리를 해나가는 느낌이 든다.

 우울감은 앞으로도 언제든 찾아 올 것이다. 온전하게 내 감정을 돌볼 절대적인 시간이 없을 때 우울감에 깊이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1. 운동 -체력이 있어야 감정 기복이 덜하다.

 2. 명상- 우울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우울감이 왔다는 것을 관찰한다.

 3. 글쓰기- 감정을 쏟아낼 가장 안전한 장치. '지금 우울하다'라고 적으면 감정이 하나의 문장으로 존재하고, 나 자신과 거리를 조금 두고 객관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나중에 보았을 때 '그 때의 우울감이 지나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도 하다.

 

 이 3가지를 우울감에 대한 백신이자 처방전으로 여기려 한다. 우울감을 겪은 날을 적어나가는 것 자체가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하게 되었다.

 

"글을 왜 쓰는가?"

에 대한 답 또한 이 글을 쓰며 어렴풋이 얻게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쓴다. 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나의 감정이 오고 떠나는 것을 기록한다."를 하나의 이유로 삼고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