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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기록,필사

028> 이랑 에세이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삶은 무엇일까?

by 쑥잼 2020. 10. 16.

이랑의 에세이를 읽었다. 가수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와중에 낭비에 대한 얘기를 한다.

 

"낭비는 재밌는 거야. 나는 낭비하려고 사는데, 낭비 없으면 너희들 가르치고 일만하고 집에 가서 자고 일어나고 다시 일하고 그렇게 살라고?"

"낭비 괜찮네요."

 

낭비가 없다면 인생은 정말 숨이 막힐 것 같다. 돈이 안 되지만 재밌는 일들, 그걸 하려고 돈을 벌고 있는데 그런 재미가 없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고단해진다. 그 일이 무엇이든 일의 본질이 고단함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이 고단한 사람들의 하루를 채워줄 짧은 위로를 만드는 사람이고, 바로 내가 그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 위로를 만드는 일을 하는 예술가도 결국 고단해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만들고 싶다. 

 

그래. 일은 고단한 것인데, 왜 아무도 그 본질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꿈을 이루라는 휘황찬란한 말만 해서는 꿈을 못 이룬 나는 나를 불쌍히 여겨왔다. 일이 너무 재미없고 힘들구나. 일을 시작하고 온갖 잔병을 얻었고 급격히 늙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고단함은 일에 항상 들러붙어 있는 것이라고, 그 간단한 전제를 알았다면 지난 10년간 내 마음이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힘든 일은 있다. 일은 고단하다. 내가 하는 일에도 좋은 점이 있다. 다 좋은 건 없다. 

 

일터로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오고, 관련된 꿈을 자꾸 꾼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감정과 나를 결부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사는 게 뭘까? 이랑님 말처럼 '삶은 나 자신을 잘 먹이는 일'일까? 

 

나 하나 먹여 살리려고 참 고생했다. 내가 돈을 벌어 나를 먹여 살린 지난 11년은 대체로 고되었다. 이랑님처럼 나도 내 삶을 손놓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 한 번 씩 다가오고, 내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본다. 안락사는 언제 보편화될까? 생명경시풍조가 생긴다며 안락사를 반대하는데, 실상은 노동자 계급이 고단하다고 다 안락사해버리면 사용자 계급이 좋을 일이 없어서 반대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누군가가 해야만 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런 일들을 하고 있으니깐. 삶의 시작도 내 뜻이 아니었고, 삶의 끝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일이 서글프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감정이 들쭉날쭉 하는 날이다.